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(문단 편집) == 범인의 배경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img2.daumcdn.net/20161125175608934qqds.jpg|width=100%]]}}}|| 1974년 10월 14일 재판을 받고 있는 문세광. 범인인 문세광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[[재일 한국-조선인|재일 한국인 2세]]로, 사건 당시 만 22세였다. 1973년 8월 [[일본]] [[도쿄도|도쿄]]에서 [[김대중 납치 사건]]이 일어났을 때 문세광은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 인질극을 벌이고 폭발 테러를 벌이자고 한청 중앙본부 부의장인 김군부에게 편지를 보냈다. 허나 문세광이 보내는 주소를 착각하여 한청본부로 보내려던 이 편지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던 [[재일본대한민국민단]]에 보내졌고 민단은 깜짝 놀라 [[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|주일 한국대사관]]에 이 편지를 보냈다. 문세광이 보낸 편지는 최종적으로 [[중앙정보부]]가 입수하였고 이때부터 중정은 문세광을 예의주시하게 되었다.[* 2005년 MBC [[이제는 말할 수 있다]]에서 김군부는 이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. 그리고 1년 후 민단계 언론인 통일일보에서 이 편지가 공개되었다.] 1974년 5월 그는 [[북한]]의 대일 공작선이며 재일교포 북송선이기도 한 '만경봉호(萬景峰號)'에서 박정희를 저격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문세광은 전혀 공작원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[[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|조총련]]과도 관계가 미약한 재일교포 운동권에 불과했다. 장거리에서 표적을 맞힐 수 있는 권총사격을 포함한 특수공작훈련은 커녕 가벼운 고문에도 쉽게 술술 불 정도로 나약한 인물이었다. 문세광의 생애와 사건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[[문세광]] 문서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